2022년 4월 6일 수요일

83524 - 퍼즐

 1.




 

에머랄드는 필사적으로 살았었다.

들실장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고

사랑하는 주인님과 헤어진다는 것은 더더욱 할수 없었다.

 

 

어라너 그거 숫자를 센거니?”

그런데스...”

 

 

그녀가 주인을 만난 것은 여름의 늦더위가 한참을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들실장들이 지내기에 가장 힘든계절이라고 하면 보통은 겨울을 꼽을 것이지만조금이라도 지혜가 있고 연륜이 생긴 2년차의 실장들에게 물어본다면 다들 여름이라고 할 것이다.

추위는 그 자체가 흉기로서 들실장들의 목숨을 빼앗아 가지만 각종 보온재들-신문지,낙옆,스티로폼등-을 이용하면 어느정도 극복이 가능하다그리고 아주 생존에 유리한 장점도 제공하는데 추위가 기승을 부리면 학대파도 자취를 감춘다영하의 날씨에 눈맞아 가면서 실장석을 정력적으로 때려죽이는 학대파는 손에 꼽을 정도이기 때문에 추위가 심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살 수 있는 확률도 늘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여름은 다르다 한 낮에는 작열하는 태양이 지표면의 온도를 살인적으로 올리기 때문에 열사병으로 성체실장석도 사망하기 일수이고들실장들의 고질적인 문제인 식수부족은 여름철에는 목숨과 직결되기 마련이다가혹한 낮이 끝이나면 여름밤은 그야말로 학대파를 위한 무대가 된다열대야에 시달리는 학대파들은 풀스윙 빠루질 한방으로 숙면을 보장받는 것이다열대야가 일주일이상 지속되는 경우 완전 구제에 가깝게 실장석들이 줄어들기도 한다.

 

그녀는 막 성체실장석이 되었었다.

그녀가 자실장이던 무렵 친실장은 먹이다툼을 하다가 다른 들실장이 찌른 못을 맞고는 시름거기다 죽었다차녀는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뛰쳐나갔다.

남은 3자매들은 친실장의 썩어버린 시체 앞에서 굼주림에 서로를 잡아먹었다.

 

 

장녀짱 그만두는 데치아픈데챠!!!”

치프프프... 안되는 데치, 4녀짱은 내가 먹어버리는 데츙~

 

 

실장석이나 사람이나 평소의 모습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극한의 상황이 오면 그 본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만두는 데챠!!!”

치벳!”

아픈데치... 와타시의 몸이 없는 데치...”

 

평소부터 다른 자매들에 비하여 영특하던 3녀는 친실장이 숨겨둔 못을 쓸 기회를 재고 있었고 4녀를 먹는데 정신이 팔린 장녀의 뒷머리에 못을 박아넣는데 성공하였다.

못을 집어던진 3녀는 머리만 남은 4녀를 집어들었다.

“4녀짱 정신차리는 데치이제 괜찮은 데치!”

“...”

아무리 실장석이 엉터리 같은 회복력을 지니고 있어도 머리만 남은 상태에서 살아남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텅빈 눈으로 4녀의 머리였던 것을 보던 3녀는 그제서야 죽어가는 장녀를 보았다.



왜그랬던 데챠다 같이 힘을 합쳤으면 살수있었을지도 모르는 데챠아아아!”

“3녀짱

어쩔수 없었던 데치장녀짱을 막지 않았으면 내가 죽었는데챠죽기싫은데챠죽는건 무서운데챠아아아아!!!”

“3녀짱

평소와 같이 상냥한 목소리.

아침잠 많은 와타시를 깨워주던 목소리.

마마가 없을때에는 응석을 받아주며 자장가를 불러주던 그 목소리.

“...장녀짱...?”

죽여줘서 고마운 데치

색이 다른 피눈물을 흘리며 장녀는 자신을 막아준 3녀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장녀짱나는...”

마마...”

파킨

 

실장석이나 사람이나 극한상황의 모습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지막이 오면 그 본모습을 나타나는 것이다.

 

장녀의 죽음을 본 3녀는 걸어서 골판지 밖을 나왔다.

작열하는 태양이 달궈놓은 보도블럭은 아직 자실장인 3녀의 발을 구워버렸지만 3녀는 아픔을 느끼지도 못하고 그저걸었다.

 

죽자.

 

 

일가족이 사라져버린 지금 그녀는 살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살아야할 이유도 없었다.

 

 

어떻게 죽을까?

 

 

여름철의 살인적인 태양광 때문에 본래같은면 자실장을 습격해야한 들실장들은 모두 그늘에 숨어있는 상태였다.

 

 

꼭 실장석에게만 죽으라는 법 없지

 

 

 

3녀는 계속걸었다.

걸어가는 것밖에 할수없었다.

 

갑자기 시아가 높아 진다.

“...데치?”

요 꼬맹아 이렇게 더운데 혼자서 어딜가니?”

“...닌겐상



미국에서 유학중인 미카미 렌지는 여름방학을 맞이해서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서 후타바 공원을 지나던 그의 앞에 온몸이 피칠갑이 된 자실장 한 마리가 데치데치 걸어오고 있었다.

사실 공원근처를 다니다 보면 피칠갑한 자실장 정도는 이상할 것도 없다머리가 반쯤 날아갔다던지 가죽이 다 벗겨져 버린 정도가 아니면 피칠갑 정도는 흔한 풍경인 것이다.

다만 인간을 보고도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마치 볼일이 있다는 듯이 가까이 오는 것은 아주 드문 경우였다.

실장석을 다루는 각종 서브 컬쳐에서는 사람이 지나가면 탁아를 한다드라아니면 먹을걸 요구한다더라 하는 상황을 자주 설정하는데사실 들실장 입장에서 보자면 SF영화 만큼이나 황당한 이야기이다.

그녀들이 성체가 된다고 해도 크기는 4배를 가뿐히 넘기고 힘은 비교하는것도 불가능할 정도로 차이가 나는 존재에게 가서 그런 것을 요구하는 정신나간 실장석 개체들도 분명히 존재는 한다다만 그런 개체들이 그런 말을 꺼내자 말자 걷어차여서 산산조각 난다든지 빠루의 일격에 머리가 박살나서 흩날리면 상식적인 실장석은 인간을 피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녀들도 생각 정도는 하고 사는 것이다.

물론 그런 상식을 알고있는 렌지로서는 자신이 집어들어도 얌전히 자신을 바라보고있는 이 자실장이 꽤나 별난 개체라고 생각됐다.

 

왜 그러니뭐 할말이라도 있니?”

 

 

 

 

죽여주는데치와타시는 죽어야 하는 데치







2.



 

주인님 여기 놔두면 되는 데치?”

고맙다 에머랄드

기대이상이었다어차피 들실장 조금만 지나면 똥벌레의 본성을 드러내고는 자멸할것이라고 생각했었던 렌지는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닌겐상... 죽여주는데치... 더 이상 살수없는데치...”

잠시만나 너네 뭐라는지 못알아 듣거든?”

거참 귀찮군렌지는 바지 주머니에서 폰을 꺼낸뒤 링갈을 실행했다.

 

 

빠각

데챠아픈데챠너무한데챠아아아!!!”

링갈에서 표시된 텍스트를 보자말자 3녀의 머리에 데코핀이 작렬했다힘은 그다지 들어가있지 안들어갔지만 개란껍질정도의 내구력인 자실장의 머리에는 상당한 통증을 선사해주었다.

또 그런 못된소리 할 거야?”

테이...”

렌지의 손가락이 다시 눈앞에 놓이자 3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안하는 데치이제 열심히 사는 데치!”

오냐

오른손을 들고 선서하듯이 대답하는 자실장이 귀여웠던 것일까렌지는 자실장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마침 소재도 있어야하고어차피 혼자니깐 그냥두면 100% 죽겠지?’

사실 렌지는 3주전부터 모종의 일을 위하여 자실장을 찾아 다니고 있었다물론 조건이 제법 많이 붙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자만 살아남은 자실장]일 것이다.

테이...”

눈을 감고서 렌지의 손길을 즐기는 3녀를 보며 렌지는 마음을 굳혔다.

너 나를 따라갈래?”

테치?”

뭐 사육실장으로는 못해주지만 대신 비바람은 피할수있구 밥도 나오는 곳이야

3녀의 눈이 렌지의 눈과 마주쳤다.

사육실장이 아닌데치?”

그렇지 나는 너를 길러주지는 못해

하지만 밥은 나오는 데치?”

그거는 보장하마그리고 안전한 잠자리도 줄게

3녀 또한 이것저것 물어보기는 하였지만 따라가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있는것도 아니었다.

테이... 알겠는 데치잘 부탁드리는 데치!”

오냐

 

 

 

렌지는 자신의 손에서 신기한 듯이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자실장을 들고서 후타바대학으로 향했다.

일본의 수많은 4년제 대학중에서도 전통의 명문대인 동경대와세다대,게이오기주쿠대를 제외하고서는 다음줄에 놓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국립대학인 후타바대학교.

렌지는 그 중에서도 세포생물학과 실험실에 문을 두드렸다.

미야모토 오렌만이야

“... 뭐야 렌지잖아소문에는 LA에서 총맞고 죽었다고 하든데

누구야그런 헛소문 퍼트리는 녀석

떡졌지만 아직 풍성한 검은머리칼를 벅벅긁으며 실험실 의자에서 늘신한 몸을 일으키는 자신의 소꿉친구 미야모토 호타루를 보며 렌지는 솔직한 감상을 입에 담았다.

가슴 더커졌구나

“...나한테나 그러지 딴여자한테는 그러지마기껏 잘생기고 돈많은데 입이 싸니깐 인기가 없잖아

너무 완벽하면 재미 없잖아그리고 너도 남말할처지가 아닐텐데그 때묻은 실험가운 벗고 머리나 감고 다니시지

테치...? 닌겐상 여기가 와타시가 있을곳인 테치?”

둘의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던 3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직스할꺼면 니네 집에서 해라

안해그리고 실장석한테는 관심없어

...실장인한테는 있지만 말이지

속으로 한마디를 덧붙인 렌지는 3녀를 테이블위에있던 적당한 종이 박스 안에 넣어 주었다.

여기가 니가 있을곳이야 나는 매일 오지는 못하겠지만 최대한 자주 올게 알겠지?”

알겠는테치고마운 테치!”

링갈을 보고있던 호타루의 눈에 가벼운 이체가 흘렀다.

“...헤에고맙다고 인사도 할줄알다니 사육실장이야?”

아니나가서 이야기하자구

 

 

두 닌겐상이 나간후 3녀는 박스에서 테치테치 기어나와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깨끗한 테치

가족들이랑 같이 살았던 골판지 집은 언제나 배설물과 음식물찌꺼기의 냄세가 났었다.

밝은 테치...”

가족들이랑 항상 같이 살았던 골판지 집은 언제나 어둡고 눅눅하였다.

아무도 없는 테치...”

가족들이랑 태어날때부터 항상 같이 살았던 골판지 집은 자매들과 마마와 함께있어서 비좁지만 언제나 떠들썩하게 지냈었다.

“......데챠아......”

이제는 다시는 볼 수 없는 가족들의 마지막모습이 하나씩 떠오른다.

못에 찔려 몇일을 고통스러워하다가 죽은 마마.

배고픔을 못이기고 뛰쳐나가버린 차녀짱

장녀에게 잡아먹힌 4녀짱

...자신을 죽인 자매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긴 장녀짱

와타치만이 살아남았다.

혼자다.

혼자가된 와타치를 닌겐상이 주워주었다.

하지만 혼자이다.

테이...”

3녀는 그 생각과 동시에 기절하듯 잠들었다.

 

 

 

 

연구실 바로앞의 자판기에서 뽑은 싸구려 종이컵 커피를 호타루에게 전해주며 렌지는 입을 열었다.

저 자실장 좀 길러주라

“...그 일에 사용할 자실장이 아까 그 자실장이야?”

그렇지뭐 길게 걸리지는 않을 거야대략 한달안에 끝날꺼라고 봐

“...-니가 그렇게 기한을 말해서 지켜진적이 거의 없는거 같은데?”

빈 종이컵을 구겨서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으면서 렌지는 단언했다.

아니 이번에는 확실해자실장이 성체실장으로 다 자라기전에 끝을 봐야하거든

“...그러면 나는 뭐 먹이 주는거 외에는 다른 할 일은 없어?”

“...... 없을꺼같아?”

저 재수없는 미소를 보니 또 못된생각을 떠올렸군.

호타루는 자신의 소꿉친구의 상쾌한 미소를 보며 한숨을 푹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