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6일 수요일

격리구더기 - 위석 그림

 

남자는 가스불을 켰다. 


불 위에 올려진 커다란 냄비 안에는 약 이십마리 정도 되는 자실장과 엄지실장, 구더기가 물에 잠긴 채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녹색 물에서는 지독한 실장 똥 냄새가 올라왔다. 질식의 고통 때문에 하나같이 실변을 한 것이다. 남자는 얼굴을 찌푸리며 냄비의 뚜껑을 닫았다.


삼 분이 지나고 오 분이 지나도 냄비 속의 실장석들은 여전히 죽지 않고 꿈틀거린다. 식탁 위의 유리병에 들어있는 위석 스무 개와 병 옆에 굴러다니는 빈 박카스 병들 덕분일 것이다. 물이 끓은 지 이십 분쯤 됐을 까, 파킨 소리 하나 없이 잠잠하던 유리병 속 위석들이 하나씩 검은 색으로 변해갔다. 모든 위석이 새까맣게 변한 뒤에야 남자는 냄비의 불을 껐다.


병에 찰랑찰랑하게 부어둔 박카스는 이미 전부 말라붙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수조에서는 친실장 두 마리가 그 광경을 피눈물을 흘리며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 광경을 생생히 볼 수밖에 없도록 몸이 고정되어 있다는 거지만. 수조 벽면에 세워진 기둥에 꽁꽁 묶인 친실장들의 눈에서 초록색과 빨간색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 눈물은 얼굴을 타고 내려와 발 밑에 있는 팔레트 위로 떨어졌다.


남자는 병에 담긴 검은 위석을 절구 안에 붓고 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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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명성을 날리는 남자의 새 작품은 위석 그림이었다. 검은 색 바탕 한가운데에 붉은 기운이 도는 초록색 위석 하나가 그려진 단순한 그림. 


평화롭게 사는 실장석들을 전문으로 그리던 남자의 작품으로써는 예외적이었지만, 평론가들은 하나같이 색감에 대해 혀를 내둘렀다. 


"검은 바탕에서는 절망이 생생히 느껴지고 초록색 위석에서는 슬픔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물감만으로 이런 표현을 어떻게 한 건지 저는 대체 짐작조차 가지 않는군요. 굉장한 작품입니다."


방송사 인터뷰에서 노교수 하나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말했다. 그 광경을 거실의 tv로 보던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는 커다란 콘페이토 봉지를 뜯어서 수조 속 먹이그릇이 넘칠 정도로 부어주었다. 콘페이토가 딸그락 딸그락 소리를 내며 떨어져도 수조 속의 친실장 두 마리는 바닥에 가만히 주저앉은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완전히 미친 것이다.


그 광경을 잠시 씁쓸하게 지켜보던 남자는 수조를 통채로 집어들어서 아틀리에로 옮겼다. 먹이그릇에서 떨어진 콘페이토가 수조 안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데도 친실장들은 초점 잃은 눈으로 가만히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젤 앞에 앉은 남자는 화폭에 그 광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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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화는 보통 무생물이나 죽은 생물을 오브젝트로 그린다. 하지만 이 정물화는 조금 특별하다. 색색의 콘페이토의 바다 속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친실장 두 마리. 입고 있는 녹색의 옷은 화사하지만 그 눈은 죽은 듯 광택이 없이 흐릿하다.


남자는 그림을 완성한 뒤 마지막으로 두 실장석의 눈을 그려넣었다.


파킨.

파킨.


남자가 마지막 붓질을 하는 순간, 실장석 두 마리는 천천히 뒤로 쓰러졌다. 콘페이토에 묻혀서 생애 마지막 숨을 내뱉는 친실장의 눈에서 초록색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린다. 


친실장의 머리 옆에 놓인 색색의 별사탕들은 천천히 녹색 빛깔에 물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