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6일 수요일

격리구더기 - 마마들의 합창

 

콘서트홀 안은 수군수군거리는 관객들의 소리로 가득찼다. 오늘의 공연은, 글쎄,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빨간색 벨벳 드레스를 입은 오십 마리의 실장석이 오늘의 주인공이었다.


무대 가운데 놓인 테이블 위에서, 실장석들은 줄과 열을 맞춰 서있었다. 정확히는 양 발이 테이블에 묶여 결박되어 있다고 해야겠지만 . 테이블 밑에는 물이 찰랑찰랑 담긴 커다란 수조가 놓여있었다. 양 눈이 녹색이고 배가 불룩한거 보니 전부 임신 중인 친실장들이다. 주변을 보며 움찔움찔 하는 걸 보니, 교육이란 이름으로 받은 학대가 얼마일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한 명 한명 입장하고, 마지막으로 화려한 턱시도를 입은 남자가 연단 위에 올라선다. 오늘의 지휘자이다. 


지휘자는 관객을 향해 잠깐 목례했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잦아들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악기를 점검할 동안, 친실장들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데스 한마디 꺼내지 않고 주변을 흝어본다.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남자는 지휘봉을 힘차게 휘둘렀다.


"뎃데로게~" 


오십 마리의 실장석이 일제히 태교의 노래를 합창한다. 웅장한 금관악기와 목관악기의 소리가 그 뒤를 따른다.


"인간은 우리의 노예인 데스~"

"스테이크와 별사탕을 뜯어내는 데스~"

"세상은 노예가 가져다주는 행복으로~"

"가득차 있는 데스! 얼른 나와 마마를 보는데스!"


무대 위에 설치된 고성능 린갈은 실장어를 통역해서 무대 옆쪽에 걸린 거대한 스크린 위에 표시해준다. 울먹울먹하는 얼굴로 건방진 태교의 노래를 불러대는 친실장들을 보며 객석에서는 짧은 웃음이 몇 번 튀어나왔다.


남자는 지휘봉을 몇 번 휘둘렀다. 모데라토(걷는 속도)로, 부드럽게. 친실장들은 지휘에 맞춰 입을 다문다. 뱃 속의 자실장들의 파트이다. 부드럽디 부드러운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소리에 맞춰, 친실장의 뱃속에 잇는 새끼들의 아주 작은 답가가 링갈에 번역되어 나온다.


"마마랑 헤어지는건 아쉬운 레후~"

"하지만 메로시킬 인간은 많고 많은레후!"

"마마가 말한대로 사육실장이 되면~'

"고생과 고민따위는 할 이유가 없는레후!"


관객석에선 또 작은 웃음이 터져나왔다. 


남자는 지휘봉을 다시 치켜들었다. 금방 울음이 터질듯한 눈으로, 친실장들은 다시 태교의 노래, 아니 태교의 비명을 지른다.


"고민과 고생은 할 이유가 없는데스~"

"그런건 인간 노예의 일인데스~"

"아니타는 똥노예에게 똥을 먹이면서~"

"세레브한 삶을 살아가면 되는데스우!"


남자는 타악기 파트를 향해 지휘봉을 휘둘렀다. 심벌즈와 드럼 소리와 함께, "레후!" 소리가 났다. 친실장 하나가 참지 못하고 자를 낳아버린 것이다.


비명을 지르려던 친실장은 지휘자의 눈을 보고 입이 굳는다. 찰나의 사이, 마마의 총배설구에서 나온 저실장은 그대로 수조로 떨어진다. 남자는 또다시 손짓했다. '합창을 이어가라.'


무대 위의 링갈은 수조 안에서 익사해가는 구더기의 입모양까지 포착해서 번역했다. 


"바깥 공기는 아주 향기롭고 시원한 데스~"

"꼬르륵 꼬르륵 숨이 막히는 레후 괴로운 레후"

"맛있는것도 아주아주 많이 있는 데스~"

"마마 제발 살려주는레후 숨이 막히는 레후"


풍덩, 풍덩, 친실장들의 발 밑으로 구더기가 하나 둘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태교의 합창, 아니 비명은 이제 무질서한 악쓰기가 되가고 있었다. 남자는 솜씨있게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친실장의 비명에 맞춰간다. 눈만 봐도 실장석의 속을 뻔히 들여다볼 수 있는 학대파에겐, 무질서한 소음을 음악으로 바꾸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친실장들은 피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되는 대로 악을 쓰고 있었다. 합창을 하는 자, 인간에게 사정하는 자, 모든 것을 저주하는 자... 수조 안으로 떨어진 구더기들은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쳤지만 돌기같은 발을 써서 수면 위로 헤엄친다는건 불가능하다. 질식의 고통 때문에 탈분한 구더기들은 초록 빛 물 안에서 하나둘씩 죽어갔다.


"인간상 제발 자를 살려주시는데스!"

"마마는 거짓말쟁이레후 고통스러운 레후 살려줘 살려줘 숨을 못쉬겠레뺘"

"거느릴 노예는 많고 많은데스~"

"데갸아아아악! 악마새끼들을 저주하는 데스!"

"프니...프니..."


무대에 이상이 있는지, 린갈이 몇 초 정도 꺼졌다. 풍덩. 빰빠밤. 뎃데로게. 데갸아아악! 풍덩. 오로롱. 레뺘악! 딴따단. 잠시 무질서한 소리들로 가득찼던 콘서트 홀은 , 링갈의 전원이 돌아온 뒤 지옥의 합창으로 변했다.


"마마는 거짓말쟁이 사기꾼 레후! 꼬르륵."

"못 하는 데챠아악! 노래를 못 하는 데챠아아 ㅏㅏㅏㅏㅏ악!"


배가 홀쭉해진 친실장 하나가 목청이 찢어져라 비명을 지른다. 남자의 손짓과 함께 연주가 잠시 멎는다. 독창의 시간이다.


"자들이 전부 죽은데챠아아아아ㅏㅇ ㅏ ㅇ ㅏ ㅇ ㅏ ㅇ ㅏ ㅇ ㅏ!!!!!!! 저주하는 데챠아아아아아으으아아아악!",


파킨. 어떤 타악기보다도 맑고 청명한 소리가 울렸다. 콘트라베이스의 우울한 저음과 함께, 풍덩 소리 대신 파킨 소리를 박자 삼아 연주는 재개된다. 


파킨. 파킨. 파킨. 파킨파킨파킨... 스트레스를 못 이긴 친실장들은 하나둘씩 눈을 까뒤집고 뒤로 자빠지기 시작했다. 시체에서 흘러나온 검은 눈물이 테이블보를 적신다. 이 분 쯤 뒤에, 테이블 위에 서 잇는 실장석은 단 한마리였다. 


"마마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데스~"

"햇님도 달님도 너희들을 바라보는 데스~"

"예쁜 자들과 함께 공원을 걷는 데스~"

"그러니 어서어서 세상에 나오는 데스~"


텅 빈 배를 부여잡고 노래를 하는 실장석. 얼굴은 초록색과 붉은 색의 눈물로 젖어있지만 표정만은 행복하다. 현실도피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는 손짓했다. 비발디의 사계절 중 '봄' 처럼, 음악의 톤은 활기차고 밝고 빠르게 변한다. 무대 위의 지옥도에 걸맞지 않는 음악이다.


"달콤한 콘페이토를 많이많이..."


채애애애애애앵!


친실장의 망상이 절정에 치솟을 무렵, 남자는 타악기 파트를 향해 강하게 손짓한다. 심벌즈의 큰 소리가 친실장을 망상에서 억지로 끌어낸다. 정신을 차린 친실장은 배가 이미 텅텅 비어 잇다는 것, 자들은 발 밑 수조 위에 둥둥 떠있단 걸 본다.


파킨. 


마지막 파킨 소리를 신호삼아 연주는 끝났다. 브라보 소리가 콘서트홀을 가득 메운다. 남자는 관객을 향해 정중하게 절했다. 휘파람과 박수, 환호 소리 안에서 앙코르 소리만큼은 끝까지 들리지 않는다.


노래를 부를 실장은 이제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