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줍게 된 것은 지난겨울이었다. 바쿠의 밥을 주려고 개밥을 챙겨 몸을 으슬으슬 떨며 밖으로 나갔을 때, 개집에서 초록색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린 실장석이었다. 난 처음엔 바쿠가 집을 지나가던 불운한 실장석을 죽인줄로만 알았다. 바쿠는 꽤 커다란 불독이었고, 주인에겐 귀여운 강아지이지만 쥐나 고양이 정도는 장난삼아 머리를 뜯어놓을 수도 있었다. 하물며 느려터진 실장석이야 도망치지도 못하고 바쿠에게 죽어도 이상할건 없다.
그러나 자실장은 살아있었다. 게다가 바쿠의 이불까지 덮어쓴채 개집안에서 오들오들 떨며 잠들어있는거 아닌가? 집을 뺏긴 바쿠는 집 밖에서 밥을 가져오는 나를 보고 꼬리를 열심히 흔들어댔다.
“뭐야, 왜 집을 뺏기고 있어”
나는 장난스럽게 바쿠의 귀를 혼내듯 몇 번 잡아당겼다. 바쿠는 잠시 끼잉 하는 소리를 내다가 밥그릇을 내려놓자 먹성 좋게 개밥을 씹어먹기 시작했다. 바쿠가 으적거리며 밥을 먹는 소리에 자실장이 눈을 비비며 깨어났다. 여유롭게 하품까지 하고는 바쿠를 슬쩍 밀어내고 개밥을 입에 넣고 있었다. 자실장은 뒤늦게 나를 발견하더니 “테쨔앗!”하고 소리 지르더니 도망치다가 한번 철푸덕 넘어졌다. 그리고 무릎을 비비면서 다시 일어나서는 바쿠의 뒤에 숨어버렸다. 그러다가 내가 갔다고 생각했는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가 계속 지켜보는 나를 발견하자 다시 바쿠의 뒤로 몸을 숨겼다.
꽤 귀여웠다.
그렇게 자실장을 기르기 시작했다. 겨울 동안에는 집에서 키웠고, 가끔 밖으로 나가선 바쿠와 어울려 놀았다. 들실장 출신이어서 그런지 겨울에도 꽤 버티는 것 같다. 어느새 눈이 녹고 봄이 되었을 때, 자실장 하나는 어느새 가족이 되어 있었다.
“어머, 어머. 이거 봐!”
아내의 호들갑 떠는 소리에 내가 놀라서 마당으로 나가니, 바쿠가 하나를 등에 태우고 있었다. 가분수의 실장석의 체형 덕분에 말을 타듯 여유롭지 못하고 계속 부들거리며 균형을 잡고 있었지만, 바쿠의 등에 올라탄 모습은 꽤나 가관이다. 연신 귀엽다고 소리지르는 아내가 셔터를 눌러댔고, 하나는 몇 번이나 바쿠의 등에서 떨어졌지만 아내가 카메라를 들 때마다 바쿠의 등에 기어 올라갔다. 바쿠는 하나가 등에 올라타기 쉽도록 살짝 다리를 구부렸다.
나도 그걸 보고는 집에서 안 쓰는 옷과 가죽조각, 노끈, 쇠붙이를 용접기로 이어 붙여 말안장을 만들었다. 아니, 개 안장이라고 해야 되나?
바쿠의 등에 안장을 걸자 그제야 하나는 넘어지지도 않고 바쿠의 등에 탈 수 있었다. 산책 중에도 안장 덕분에 바쿠가 움직여도 하나는 바쿠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고 바쿠의 등에 올라타 있다. 그러고 공원을 걷노라면 동네 아이들이 신기한 듯 따라오고, 들실장이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인터넷의 애견 까페에서 웹서핑 중이었는데, 내가 있는 동네에 웬 미친놈이 네일건으로 개, 고양이를 쏘거나 몽둥이로 두드려 팬다는 얘기다. 그런게 한두 번이 아닌 듯, 개나 고양이의 시체가 올라온 증거 사진이나 그 미친놈을 봤다는 제보가 까페에 올라와 있었다.
듣자하니 주인이 있는 개까지 심심풀이로 공격한다고 하니 바쿠를 내보낼 수가 없다. 퇴근하고 문 관건을 확실히 하고는, 밤중에 바람이 창문을 두들길 때마다 불안해서는 바쿠의 개집을 확인했다.
‘설마 남의 집까지 들어오겠어?’라고 아내가 핀잔을 주었지만 좀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하나가 테치테치 거리는 소리를 내며 안장을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왜 이렇게 무거운 테치. 착한 안장은 가볍게 끌리는 테치, 이렇게 무거우면 나쁜 안장인 테칫!]
안장에게 가벼워지라고 부탁하는 하나를 보며 나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웃는 나를 발견한 하나가 소매로 자신의 땀을 훔치며 내게 말했다.
[주인님, 산책하는 테치. 하루, 이틀, 삼일, 사일, 사일, 사일, 사일이나 산책을 못한 테치. 와타치와 바쿠는 산책을 좋아하는 테치]
나는 숫자 4 이상을 못 세서 사일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하나를 보며 잠시 웃고는 “산책은 나중에 하자”라고 말한 뒤 하나의 머릴 쓰다듬고 하나를 지나쳤다. 하나는 풀이 죽은 듯
[산책 하고 싶은 테츄우.......]
말하고 토라져버렸다.
그날 밤, 하나는 조심스럽게 하나가 안장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주인님 대신 바쿠를 산책시켜줄 생각이다.
[와타치는 책임감 있는 실장석 테치. 주인님이 바쁘신 동안 와타치가 바쿠의 산책을 시켜주는 테치. 바쿠는 기다리는 언니가 가는 테치잉! 안장은 왜 이렇게 무거운 테챠아!]
바쿠는 하나의 울음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능숙한 솜씨로 안장을 입으로 물어 자신의 등에 걸쳤다. 하나는 뭉툭한 손으로 안장의 고리를 걸며 낑낑거렸다.
[쉬이이! 조용하는 테치. 주인님이 잠든 동안 산책을 다녀오는 테치.]
적막한 밤중, 테치거리는 자신의 울음소리가 가장 시끄럽다는 것을 모르는지 하나는 연신 테치거리며 바쿠의 등에 올라탔다. 바쿠는 몇 번이나 해본 듯, 담 옆에 쌓인 상자 위로 고양이처럼 날렵하게 올라가서는 담장을 넘어갔다.
밤은 고요와 휴식의 시간이다. 그러나 하나와 바쿠에겐 즐거운 산책의 시간이었다. 개와 실장석이 친구가 된다는 말을 들어본 사람은 없겠지만 둘은 친구였다. 밤바람이 머리칼을 간질이는게 상쾌했다.
다른 인간을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깡마른 남자였는데, 캡모자를 써서 얼굴이 가로등의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바쿠는 남자를 지나쳐가고 있었고, 하나가 인간에게 인사한다.
[인간상, 인간상도 밤중에 산책중인 테치? 와타치와 바쿠도 산책하는 테치.]
그와 동시에 팍 하고 공기빠지는 소리와 함께 바쿠가 끼깅 거리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하나도 바쿠의 등에서 떨어져서는 땅을 굴렀다.
[바쿠는 왜 그러는 테치잉. 와타치가 바쿠 때문에 바닥에 쓰러진 테칭]
하나는 바쿠에게 불평을 쏟아냈지만, 바쿠는 예전처럼 하나를 혀로 쓰다듬는 대신 누워서는 낑낑거린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챈 하나가 걱정스럽게 바쿠를 어루어만졌다.
[아픈 테치? 설마 코로리나 도돈파를 먹은 테치? 그건 위험한 테치.......]
하나가 계속 울며 바쿠를 어루어만지는 와중에도 바쿠는 계속 낑낑거렸고, 그걸 본 남자가 바쿠를 향해 걸어왔다. 손에는 기다란 쇠파이프를 든 채였다. 인간이 다가오는 것을 본 하나가 테치테치 거리며 남자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들실장 출신이었다고 하지만 하나는 어릴 때 주워진 사육실장이었고, 인간은 자신의 친구라 굳게 믿고 있었다.
[인간상, 바쿠가 많이 아픈 테치. 바쿠를 도와주는 테치잉! 그리고 콘페이토를 주고서 주인님께 와타치를 데려다주길 바라는 테치. 일단은 바쿠를 먼저 도와주는 테치~]
뭔가 핀트가 어긋난 구조요청이었지만, 다가오는 남자를 보며 하나는 [조금만 기다리는 테치. 인간상이 바쿠를 낫게 해주는 테치.]하고 바쿠를 위로했다. 그리고 남자의 손에 들린 쇠파이프가 크게 휘둘러졌다.
“깨갱!”
퍽 소리와 함께 바쿠의 비명이 째지듯 터져 나왔다. 남자는 한번으로 만족하지 못했는지, 두 손으로 쇠파이프를 잡아서는 몇 번 바쿠를 후려쳤다. 하나는 [그만 하는 테챠아아!]하면서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겼지만 남자는 신경쓰지도 않는다. 비명도 못 지르는 바쿠를 보고 만족한 듯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뒤, 파이프를 들고 유유히 사라졌다.
하나는 남자를 쫓아 달리며 남자의 발목을 때리면서 응징을 가하다가 바쿠와 너무 멀리 떨어지자 응징을 포기하고 바쿠에게 달려갔다. 그만큼 얻어터졌으면 남자도 반성했으리라 믿는 하나였다.
하나는 오로로롱 거리는 눈물을 쏟아내며 주인님을 찾아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하나는 집이 어딘지 기억하지 못한다. 여태까지 바쿠를 타고 다녔고, 집에 돌아가는 길을 찾는 것도 바쿠의 몫이었다. 그냥 밤의 길거리를 달리다가 문득 다른 개를 발견한다. 바쿠와 닮았지만 바쿠는 아니다. 바쿠처럼 다리가 짧지도 않고, 덩치가 크지도 않다. 그냥 유기견이었다.
개를 발견하자 하나는 반갑게 테치거리며 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어린 하나가 알고 있는 개는 오직 바쿠 뿐 이었고, 모든 개들도 바쿠처럼 친절하리라 믿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는 겁도 없이 [개씨, 주인님의 집으로 가주는 테치! 주인님의 집으로 가면 개씨를 사육개로 만들어달라고 주인님께 부탁하는 테치! 고맙다는 인사는 필요 없는 테칭]하고 말하며 개의 등에 올라타려 했다.
그런 턱도 없는 시도가 통할리 없었다. 앞발이 하나의 몸통을 짓눌렀고, 개는 입을 벌려 쓰러진 하나의 머리를 물고 잡아 뜯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