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5일 화요일

사이러스 - 산타의 선물

 추운 크리스마스였다. 건물은 묘비처럼 창백하고 하늘엔 짙은 회색빛의 얕은 구름이 길게 뻗었다. 해가 지고 나면 진눈깨비가 내릴 듯싶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밤중의 추위로 길이 꽁꽁 얼어버린다는 것이다.


나야 그냥 조심스럽게 총총거리며 걸으면 그만이지만 실장석들에겐 그렇지 않은가보다. 갑작스러운 한파 때문에 공원에 놀러오는 사람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평소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두지 않은 실장석들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벤치 앞에 좌판을 벌린 것처럼 추위에 떨며 자기를 길러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자실장을 보여주려는 양 두 손으로 높게 쳐든 놈, 그냥 추위에 떨며 서로를 끌어않은 자실장을 자기 앞에 앉혀놓고 물건이 팔리길 기다리는 장사꾼마냥 앉아있는 놈, 사람들에게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해서 자신이 가치 있는 실장석임을 알리는 놈까지 다양했다. 그중 최악은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바지에 엉겨 붙으며 적극적인 구애를 하는 놈이다. 물론 여자들은 꺅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거나 점잖은 신사들은 “이크”하고 자리를 피하지만, 어린 꼬마들이나 여자를 낀 남자들은 자신의 남성성을 자랑하듯 실장석을 걷어 차버린다.


걷어 차여버린 실장석들은 추위에 회복하지도 못하고 그냥 골골대다 죽어버려 공원의 미관을 해친다. 발에 차여 크게 다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학습능력도 없는지 다음 사람들에게 영겨 붙어버린다.


살아있든 죽어있든 공원의 미관을 해친다는 점에서는 자기들 스스로가 공원에 놀러오는 사람들의 숫자를 줄여버리는 꼴이다.


밤이 되었지만 오늘따라 공원에는 사람이 많았다. 온갖 곳에 흥겨운 캐롤과 연인들, 갑자기 많아진 사람들에 기뻐하는건 실장석 뿐 아니라 실장푸드를 파는 공원 매점 주인도 마찬가지였다. 연인들은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것처럼 벤치에 앉아 실장푸드를 뿌렸다. 실장석들이 원한대로 사육실장은 되지 못했지만 그들은 오늘밤을 배부르게 보낼 수 있었다.


[행복한 데스!]


사람들이 거의 사라져버린 공원에서 실장석 한 마리가 기분 좋게 울었다. 그리고 멀리서 누군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다가오고 있었다. 빨간 옷에 뚱뚱한 체격, 빨간 모자. 바로 나다. 크리스마스 알바를 뛰고난 뒤에, 옷이 젖어버려 매장에서 꺼내 온 산타옷을 입고 퇴근하던 중이었다. 그야말로 최악.......


밤늦게 사람이 오자 실장석들은 기대감을 품고 내게 다가왔다. 내게서 실장푸드를 얻기라도 할 요량인가?


실장석은 내게 다가와서 데스데스 울었다. 별로 쓰지도 않는 스마트폰 위젯으로 실장석의 울음이 곧 번역됐다. 키지도 않았는데........귀찮은 기능이다.


[인간씨, 오늘이 크리스마스인건 알고 있는 데스?]

[크리스마스는 모두 행복한 레후. 구더기도 행복했던 레후. 여자 인간씨가 구더기에게 사랑을 담아 프니프니 해준 레훙]


“저리 가. 오늘 좆같았다고.”


그렇게 말하며 슬쩍 모여든 실장석들을 비켜지나가려 했다. 하지만 실장석 하나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욕하면 안되는 데스. 크리스마스에는 산타인간씨가 선물을 주는 데스. 우는 아이와 실장푸드를 주지 않는 똥노예에겐 선물을 주지 않는 데스]

[선물 레후? 구더기는 프니프니를 원하는 레후. 구더기는 한 번도 울지 않은 레후......레에에에엥! 사실 거짓말인 레후. 하지만 프니프니는 원하는 레후.]

[와타치는 와타치를 사육실장으로 만들어주길 원하는 테츄.]


그러면서 모여든 실장석들은 자기의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따뜻한 방과, 독라 노예, 많은 자, 목욕, 산더미 같은 콘페이토.


[산타 인간씨는 골판지를 넘어다니며 선물을 주는 데스. 빨간 옷을 입은 뚱뚱한 인간씨인 데.......스? 빨간 옷을 입은 데스?]

[산타인간씨 인 테치?]

[돼지인 테치. 뚱뚱한걸 보니 산타가 분명한 테칫! 마마, 저 산타 노예를 붙잡는 테치! 우리만 선물을 받는 테치]

[데쟈아악! 선물을 내놓는 데쟈!]


녹색 물결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산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흔들고, 검은 장화를 물어 뜯으며 선물을 갈구하는 실장석들을 보며 나는 난처해졌다. 그냥 짓밟아버리고 싶지만, 이 옷은 내거가 아니라 매장에서 빌린 옷이다. 실장석의 피가 묻어버려서는 빨래하기가 난처하다.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더럽히기로 마음먹었다. 손이야 씻으면 그만이지만 산타옷은 빨래를 해야되니까. 


가까이 있는 자실장의 후드를 붙잡고 들어올렸다. 붙잡힌 실장석은 [와타찌를 선택한 테찌? 탁월한 선택인 테찌.] 하고 자랑스러워한다. 나는 후드를 내리고 자실장의 머리를 붙잡았다. 자실장은 [와타찌의 머리를 빗겨주는건 다음으로 미루는 테찌. 어차피 시간은 많은 테찌. 와타찌는 우선 와타찌의 마마를 사육실장으로 만들어주길 원하는 테찌. 와타찌의 노예로 만들어도 괜찮은 테찌.] 라고 지껄이며 머리를 잡은 손을 치우려고 했지만 나는 손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집게손가락으로 자실장의 머리칼을 붙잡고 물맷돌을 던지듯 원심력으로 빙빙 돌렸다. 파득! 파드득 소리를 내며 녹색 원을 그리던 자실장은 곧 머리가 뜯겨 하늘로 솟구쳤다. 철퍽 소리와 함께 기괴하게 팔다리를 꺾고 떨어진 자실장은 죽지 않았는지 연신 몸을 부들거렸다.


[서, 선물 데스?]


폭력에 잠시 당황하던 실장석들은 이내 죽은 자실장의 주위로 몰려들어 그것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우웩.......


나는 자실장 몇을 비슷한 방법으로 처리했지만 모여든 실장석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자실장 몇만이 부들부들 떨긴 했지만 커다란 성체실장들은 [또! 또! 또!] 하면서 산타의 이름을 연호했다.


이래선 그냥 지나갈 순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저런 역겨운 모습을 보고서 지나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좋아. 선물을 줄게. 근데 산타는 신발에 선물을 담아주는거 알아?”


[그, 그런 상식은 와타치에게 기본인 테치]

[빨리 선물을 담는 데승]

[구더기에겐 신발이 없는 레후. 슬픈 레후......]


성급한 몇은 내게 신발을 던진다. 그리고 나는 신발 하나를 주워들었다.


“에게? 이렇게 작은 실발에는 콘페이토가 몇 개 들어가지도 않겠는걸? 후드에 콘페이토를 담아주면 어떨까?”


그러자 곧장 반응이 일었다. 단체로 옷을 벗고 내게 옷들을 내미는 실장석들의 모습은 꽤 가관이다. 나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알았어. 선물을 가져올게”하고 공공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의 청소 도구함엔 양동이가 있었다. 나는 양동에 두 개에 물을 잔뜩 받고는 “선물 가져왔다!”하고 실장석들에게 말했다.


[빨리 내놓는 테쟈아!]


어떤 놈은 어미가 없는 자실장의 옷을 뺏었는지 여러개의 옷을 든 놈도 있다. 구더기조차 포대기를 벗고는 [콘페이토 레후! 달콤달콤 레후!]하곤 몸을 징그럽게 꿈틀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선물 받아라!”


하고 양동이를 엎어 물을 흩뿌렸다. 갑자기 차가운 물이 뿌려지자 경직되는 실장석들. 곧 다음 양동이를 비우자 추위가 칼처럼 아려왔다.


[콘페이토가 아닌 테챠악! 빨리 콘페이토를 가져오는 테챠!]

[추운 데스! 너무나 추운 데스! 옷을 입는 데스......옷을 입어도 추운 데스. 옷이 젖어버린 데스웅........]

[착한 자들은 다시 옷을 입으면 안되는 데스! 옷을 입으면 콘페이토를 못받는 데스.]


어떤 놈들은 성을 내고, 어떤 놈들은 젖은 옷을 입는다.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 놈들은 콘페이토를 가져올 줄 알고 옷도 입지 않은체 오들오들 떨며 옷을 내밀고 있다.


나는 그것을 보며 양동이를 청소 공구함에 넣어놓고 집으로 향했다. 실장석들은 멀어져가는 나를 쳐다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이 추위에 옷까지 젖어버리다니. 아마 실장석들은 오늘 밤을 넘기긴 힘들겠지.


하여튼 메리 크리스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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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이런걸 쓰고 싶진 않았던 레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