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득 내가 담배를 피웠었더라면 하곤 바랬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뭐가 좋은지 실장용 빗으로 연신 자기 머리를 다듬는 실장석 ‘하나’ 때문이다. 거울을 보며 열심히 다듬고 있지만, 실장석의 미숙한 손놀림으로는 계속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있을 뿐이다. 보다 못한 나는 빗을 뺏어들고 실장석을 무릎에 앉힌 뒤 머리를 빗어준다. 그게 기분 좋은 하나는 눈을 감고는 “뎃데로게”하며 아무리 들어도 잘 부른다고 말할 순 없는 음률로 기분 좋게 노래를 불렀다.
“오빠, 하나 내보낼 준비 됐어.”
거실에서 아내가 외치자 나는 화들짝 놀라며 린갈을 손으로 감싼다. 혹시나 아내의 목소리가 린갈을 통해 번역될까 싶어서였다. 다행히 아내의 소리는 너무 멀리서 들렸는지 번역되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하나 머리좀 더 빗겨주다 출발할게.”
내가 기운없이 대답했다. 거실엔 실장푸드, 튼튼한 골판지와 별사탕 몇 개가 집에 쌓여 있었다.
“출발하자. 하나야.”
내 말에 하나가 기분좋게 [데뎃~]하고 울었다.
나는 하나를 버리러 간다.
하나를 버리게 된건 내가 하나에게 질렸다거나, 하나가 몹쓸 분충짓을 하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다. 그저 올해 아홉 살 되는 아들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하나를 키우게 된 것도 아들 덕이다. 아들이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실장석을 덜컥 사온 것이다.
아내는 길길이 날뛰며 실장석을 당장 내다버리라고 했지만, 아들은 잘 키울 자신이 있다며 울기 시작했고 나 또한 실장석을 키우자고 아들을 응원했다. 아내는 실장석이 분충짓을 하지 않아야 하며, 자신은 실장석에게 일체 관여를 안 할테니 아들이 전담해서 실장석을 키우라는 조건으로 그것을 허락했다. 물론 절대 관여를 안 할 정도로 아내가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는 아니었다. 아들이 바쁘거나 친구들과 놀러 갈 때면 하나에게 밥을 주고, 놀아주던게 내 아내였으니깐.
1년 정도가 지나자 테찌테찌 거리던 귀여운 하나는 곧 저음으로 데스데스 하고 울기 시작했다. 샴푸로 자주 씻기곤 했지만 실장석 특유의 노린내는 없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와 아내는 꽤 정이 들어버린 하나를 귀여워했지만, 문제는 바뀌어버린 아들의 태도였다.
더 이상 귀엽지 않고 징그러워진 하나를 때리거나, BB탄 총으로 등을 쏘며 즐거워했다. 착한 하나는 BB탄을 피해 도망치다가도 아들이 “하나야, 어딨니. 같이 놀자.”하면 미련하게도 “데뎃~!”하고 아들에게 다가갔다가 또 BB탄에 얻어맞으며 도망쳤다.
아들의 괴롭힘이 심해졌다. 어느 날, 하나의 머리카락을 라이터로 지지며 장난치는 것을 발견한 아내는 처음으로 아들에게 매를 들었다. 엉덩이에 피멍이 들 때까지 맞고, 퇴근한 내게도 위로의 한 마디 못 들어보고 혼난 아들이었지만 아들은 그것을 반성하는 대신 그 화풀이를 하나에게 하는 모양이다.
전처럼 노골적이진 않았지만 하나의 음식에 생선가시를 섞거나 옷을 가위로 찢는다. 물론 아내가 찢겨진 옷을 들고 엉엉 우는 하나의 옷을 바늘로 꿰매주지만 하나는 바뀌어버린 아들의 태도에 스트레스가 심한지 점점 수척해지고 있다.
처음엔 시골에 있는 장인께 하나를 보낼까 싶었지만 장인은 이미 마당에 개를 키워기르고 있기 때문에 장인어른이 미안해하며 그것을 거절했다. 나 또한 하나가 개에게 물려죽는 꼴을 보고 싶진 않기에 계속 부탁하진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아들을 버릴 순 없는 노릇이니 하나를 버릴 수밖에.
나는 하나를 차에 태우고 트렁크에 아내가 챙겨놓은 짐을 실었다. 아내는 떠나보내는 하나가 눈에 밟히는지 하나의 품에 코팅된 작은 가족사진을 쥐어주고, 하나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러길 잠시. 차가 출발할 때까지 아들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아들이 하나를 키우는 동안 생명의 소중함을 알기 바랐을 뿐인데.......
밤의 도로를 달리는 동안, 하나는 오디오를 통해 들려나오는 동요를 들으며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큰 주인님과 외출 하는건 처음인 데스. 옛날엔 와타시는 작은 주인님과 밖으로 놀러 다닌 데스. 공놀이도 한 데스우. 달리기도 한 데스. 와타시는 공놀이를 좋아하는 데스~. 어디로 가는 데스?]
미도리의 물음에 내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공, 공원.”
[와타시도 공원을 좋아하는 데스~!]
그러더니 다시 뎃데롯게 거리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마 동요를 따라 부르는 것 같지만 같은 동요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음색이다. 나는 조용히 린갈을 껐다. 하나와 말하는 것 자체가 내겐 너무 힘든 일이었다. 린갈을 껐지만 하나는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큰 주인님. 오늘은 멀리까지 나온 데스.]
차는 다른 시까지 가서야 멈췄다. 실장석의 걸음과 기억력으로는 다른 구까지만 가도 돌아오기 힘들지만, 나는 하나가 다시 돌아올 시도도 못할 정도로 멀리까지 왔다. 하나가 집으로 돌아오며 고통 받길 원하지 않는다.
[여긴 조금 깜깜한 데스. 와타시는 그래도 큰 주인님과 함께라면 괜찮은 데스. 산책하기 딱인 데스~♬]
차가 멈추고 안전벨트를 풀어주자 하나가 신나서 밖으로 뛰쳐나간다. 밤중이라 공원에는 사람이 없다. 트렁크를 열어 하나의 집을 내려주는 동안 린갈을 켜고 하나에게 충고를 해준다. ‘음식은 아껴 먹어라, 다른 들실장을 조심해라, 들실장이 다가오면 호신용품(사육실장용 호신용품인데 사람이 맞아도 고통스러울 정도의 매운 가스를 발사한다.)을 주저 없이 쏘거라. 겁먹은 들실장들은 다신 덤벼들지 못 할거다, 무엇보다 사람을 조심해라.
내 말을 알아듣긴 했을까? 나는 다시 린갈을 껐다.
차에 올라타자 하나가 당황한다. 차에 태워달라는 듯 차에 붙어서 문을 톡톡거리지만 곧 시동이 걸리고 부웅 하며 출발한다. 갑작스럽게 출발한 차를 보며 하나가 울었다.
[큰 주인님, 기다리는 데스! 와타시를 놓고 간 데스.]
그러다가 차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착잡한 눈을 살펴 백미러로 하나를 찾았지만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아까도 생각했었지만,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다신 동물을 키우고 싶지 않다.
공원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진 골판지와 실장용품 틈에서 하나가 자신을 위로하듯 외쳤다.
[와타시가 먼저 술래인 데스? 조금만 기다리는 데스우. 와타시가 곧 잡는 데스]
그러더니 차가 출발한 방향을 향해 달렸다. 두 갈랫길까지 달렸지만 어디로 차가 사라졌는지 알 수 없는 하나가 처량하게 울었다.
[조금만 기다리는 데스. 너무 빠른 데승......]
그러더니 오른쪽 길로 결정한 듯 오른쪽으로 꺾어 달렸다.
[데헥, 데헥. 와타시가 진 데스. 큰 주인님이 역시 이긴 데승. 이젠 주인님이 술래인 데스. 주인님이 저를 잡을 차례인 데스으우!]
그렇게 외치고 멀리를 살피지만 차는 돌아오지 않는다. 미도리는 쓸쓸이 돌아가 짐이 있는 곳에서 멈춰 섰다.
[얌전히 기다리면 분명 오시는 데스. 잘 기다렸다고 콘페이토를 주실지도 모르는 데승♬ 빨리 오셨으면 좋겠는 데스.]
하나의 적록색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
개와 고양이를 키울 능력이 안되면 키우지 않는 레후.......
어떤 생물을 키운다는 것은 그 생물의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것과 같은 의미인 레후.
동물을 키우면 먹이고 입혀주고 그 뒤처리도 해주는게 맞는 레후. 결정적으로 죽을 때까지 사랑해줘야 하는 레후. 정 하기 싫으면 개한테 뒤처리를 가르치는 레후.
동물더러 '내 새끼' 라고 애지중지하는 사람들이 어째서 그 사랑으로 새끼 뒤처리 해줄 생각은 안하는 레후?
애를 낳고 '나는 아이를 키우는 거지 아이 똥 치우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레후.